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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子罕 09-24; 法語之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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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子罕 09-24;

子曰。法語之言。能無從乎。改之爲貴。巽與之言。能無乎。繹之爲貴。而不繹。從而不改。吾末如之何也已矣。

(자왈. 법어지언. 능무종호. 개지위귀. 손여지언. 능무열호. 역지위귀. 열이불역. 종이불개. 오말여지하야이의.)

 

飜譯 by sjc;

子曰。 根據하여 건네 주는 忠告 말에 어찌 따르지 않을 있으리?(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고치게 되면 (自身) 貴重하게 된다。 恭遜하게 건네 주는 稱讚 말에 어찌 기뻐하지 않을 있으리?(그러나) 稱讚의 眞僞與否를 判別하게 되면 (自身) 貴重하게 된다。 稱讚 기뻐하지만 ( 稱讚 眞僞與否) 判別하지 않고, 忠告 따르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하여 나는 어떻게 해야 方法 없다

 

構文分析 by sjc;

(=孔子)(to say)。法(decorum)(script 또는 writing)(~’s)(words of advice)。能(can)(not)(to follow)(=語助詞)改之(to correct)’(to become)(precious 또는 valuable)。巽(gently 또는 subserviently)(to give)(~’s)(words)。能(can)(not)(to be pleased)(=語助詞)繹之(to deduce)’(to become)(precious 또는 valuable)(to be pleased)(and)(not)(to discern)。從(to follow)(and)(not)(to correct)。吾(I)(there isn’t)’如之何(how)’’也已矣(=語助詞)’

 

英譯;]

The Master said, "Can men refuse to assent to the words of strict admonition? But it is reforming the conduct by the words which are valuable. Can men refuse to be pleased with words of gentle advice? But it is unfolding their aim which is valuable. If a man be pleased with these words, but does not unfold their aim, and assents to those, but does not reform his conduct, I can really do nothing with him."

 

【原文】

09.24 子曰:“法之言(1),能无乎?改之为贵。巽之言(2),能无(3)乎?(4)为贵而不而不改,吾末(5)如之何也已矣。

09-24 子曰。法語之言。能無從乎。改之爲貴。巽*1*2之言。能無*3乎。繹*4.2)之爲貴。而不繹。從而不改。吾末*5[如之何]*6也已矣。

 

【注 by sjc

*1.[] 古同“”,谦让 屈從하는(subservient), *2. (:,施予,)give grant; offer, *3.[][] to be pleased with, *4. 1)(:)draw silk 2) 引出头绪,求事理deduce; discern, *5. 없다, *6.어떻게 (how)

 

[中文注釋_飜譯 by sjc]

(1)之言:法,指礼仪规则里指以规则正言规劝; _礼仪规则을 가리킨다여기서는 礼规则으로써 勸告를 嚴正하게 말하다

(2)之言:巽,恭谦逊称许赞许里指恭顺赞许; _谦逊_称赞여기서는 顺한 稱讚을 하는 말

(3):音yuè,同“”。

(4):原义为“抽”,里指推究,追求,分析,鉴别; 義는 “실을 뽑는다”이다, 여기서는 推究,追求,分析,鑑別의 뜻이다  

(5)末:有。; 없다

 

 [中文_飜譯 by sjc]

孔子:“符合法的正言规劝能不听呢?但(只有按它来)改正自己的错误才是可的。恭顺赞许能听了不高呢?但只有认真推究(的真伪是非),才是可的。只是高而不去分析,只是表示听而不改正错误,(对这样的人)我拿他在是法了。” ; 孔子:“法에 符合하는 正言의 勸告를, 누가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단지 그것에 對한)自己의 잘못을 고치기만 하면 貴하게 된다。恭顺하고 稱讚하는 말을, 누가 듣고서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眞僞與否)을 찾아서 받아들이기만 하면,貴하게 된다。稱讚을 그저 기뻐하기만 하고 眞僞與否를 分析하지 않으며, 勸告를 그저 따르려는 뜻만 나타내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그런 사람에 對해서)나는 그를 어쩔 方法이 정말로 없다。

 

[日文 & 注釋_飜譯 by sjc]

現代語;

  • 先生 ――「正面きった意見は、きかずにいられようか。あらためるのがよいこと。遠まわしの意見は、喜ばずにいられようか。さぐりだすのがよいこと。喜んでもさぐらず、きいてもあらためないなら、わしにもそんな人はどうしようもないさ。」(魚返(おがえり)善雄『論語新』); o   先生――「正正堂堂한 意見을 듣지 않을 수 있으랴?。 自身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좋다。 婉曲한 意見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眞意를 찾아내는 것이 좋다。 기뻐하면서도 眞意를 찾지 않고、 듣고도 自身의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나로서도 그런 사람은 어찌 할 수 없다。」
  • 先師がいわれた。――
    「正面切って道理をかれると、誰でもその場はなるほどとうなずかざるを得ない。だが大事なのは過ちを改めることだ。やさしく婉曲に注意してもらうと、誰でも持よくそれに耳をかたむけることができる。だが、大事なのは、その意のあるところをよく考えてみることだ。いいになって意を考えてみようともせず、表面だけって過ちを改めようとしない人は、私には全く手のつけようがない」(下村湖人『現代論語』); o  先師께서 말씀하셨다――「正正堂堂한 道理가 말해지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는 과연!’이라고 首肯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重要한 것은 過誤를 고치는 것이다。부드럽고 婉曲하게 注意를 받으면、 누구라도 氣分 좋게 그 注意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러나、重要한 것은、그 意가 있는 곳을 熟考하는 것이다。氣分 좋게 意를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面從만 하고 過誤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는 전혀 손을 쓸 수 없다

o     

;

  • 法語之言道理をく言葉。正面からの正論。古典の格言による言葉。『集注』には「法語は、正しく之を言うなり」(法語者、正言之也)とある。荻生徂徠は「法語の言は、先王の法言なり」(法語之言。先王之法言也)と言っている。『論語』(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照。; 道理를 說明하는 말。正面에서 나오는 正論。古典의 格言에 따른 言葉。『集注』에는 (法語者、正言之也)로 되어 있다。荻生徂徠는 (法語之言。先王之法言也)라고 말한다。『論語』(国会図書館 digital collection照。
  • 改之「法語之言」にって過失を改める。; 「法語之言」에 따라 過失을 고치다。
  • 之言物柔らかで婉曲な言葉。『集注』には「巽言は、婉にして之を導くなり」(巽言者、婉而導之也)とある。荻生徂徠は「巽は未だ詳らかならず」(巽與未詳)と言っている。『論語』(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照。; 좀 부드럽게 하는 婉曲한 말。『集注』에는 (巽言者、婉而導之也)로 되어 있다。荻生徂徠(巽與未詳)이라고 말한다。『論語』(国会図書館 digital collection照。
  • 」と同じ。嬉しくなる。; 同一。 기뻐하다。
  • 繹之その言葉の意を尋ねる。『集注』には「繹は、其のを尋ぬるなり」(繹、尋其也)とある。; 그 말의 意를 찾다。『集注』에는 (繹、尋其也)으로 되어 있다。
  • 末如之何也已矣どうしようもない。置なし。手のつけようがない。「末」はここでは「無」と同じ。「也已矣」は「のみ」とみ、「~なのだ」とす。定をあらわす助。「也已」よりも; o 어찌 할 수 없다。置 없음。 손을 쓸 수 없다。「末」은 여기서 「無」와 同一。「也已矣」는 「~이다」라고 옮긴다。定을 나타내는 助「也已」보다도 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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