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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子罕 09-23;後生可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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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子罕 09-23;

子曰。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四十五十而無聞焉。斯亦不足畏也已。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飜譯 by sjc;

子曰。나중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畏敬의 對象이 만하다。 未來의 사람들의 (道德)水準이 오늘날 사람들의 그것보다 좋을지를 어찌 누가 알겠는가?40/50歲가 되어도 사람의 名聲이 들리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敬畏의 對象이 되지 않는다。

 

構文分析 by sjc;

(=孔子)(to say)。後(afterwards)(people who are to born)(can)(to be feared)。焉(how)(to know)(to come afterwards)(people)(~’s)(not)(like)(nowadays)(=語助詞)四十(40 years old)’’五十(50 years old)’(and)(not)(to be heard)(=語助詞)。斯(this 또는 then)(just)(not)(to be sufficient)(to be feared)’也已(=語助詞)’

 

英譯;

The Master said, "A youth is to be regarded with respect. How do we know that his future will not be equal to our present? If he reaches the age of forty or fifty, and has not made himself heard of, then indeed he will not be worth being regarded with respect."

 

【原文】

09.23 子曰:“后生可畏,焉知者之不如今也?四十、五十而无焉,斯亦不足畏也已。”

09-23 子曰。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四十五十而無聞焉。斯*1*2.2)不足畏也已。

 

【注 by sjc

*1.1) 【代】“斯”假借“此”,,这个this, 1.2) 。就then——表示承接上文,得出结论*2.1) 【副】也;也是also, 1.2) 【副】 ;仅仅;只是but; just

 

[中文注釋_飜譯 by sjc]

 

[中文_飜譯 by sjc]

孔子:“年人是得敬畏的,怎么就知道后一代不如前一代呢?如果到了四五十岁时还默默无,那他就有什可以敬畏的了。”; 孔子:“젊은이는 敬畏의 對象이 될 만하다. 後世代가 前世代보다 더 나을지 어찌 누가 알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에게 四五十歲까지 아무런 名聲이 들리지 않으면 그에게는 敬畏할 것이 없다。

 

[日文 & 注釋_飜譯 by sjc]

現代語;

  • 先生 ――「若い者はこわい。どうして未がわれわれ以下だといえよう。四十五十になっても知られないようなら、それはもうこわくないがね。」(魚返(おがえり)善雄『論語新』); o  先生 ――「젊은이는 무섭다。 어찌 우리 아래라고 말할 수 있으리?。 四十五十이 되어도 世上에 알려지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무서운 것이 아니다。

o    先師がいわれた。――
「後輩をばかにしてはならない。彼等の将来がわれわれの現在に及ばないと誰がいい得よう。だが、四十にも五十にもなって注目をひくに足りないようでは、おそるるに足りない」(下村湖人『現代論語』); 先師께서 말씀하셨다――
「後輩를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将来가 우리의 現在에 못 미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리? 그러나、四十 五十가 되어도 注目을 끌지 못하는 것은 무섭지 않다

 

;

  • 後生あとから生まれた人。後輩。年。宮崎市定は「後生はなる若者ではない。先生にする後生であって、問に事する後輩であろう」と注している(論語の新究)。; 나중에 태어난 사람。後輩。年。宮崎市定는 「後生은 그저 젊은이가 아니다。先生에 한 後生이고、問에 事하는 後輩일 것이다」라고 注하고 있다。
  • 可畏畏敬すべきである。ここでの「可」は認定許可の意で「~にあたいする」「~してもよい」とす。『義疏』では「可畏也」に作る。; 畏敬해야 한다。여기서의 「可」는 認定許可의 뜻으로 「~할 만하다」「~해도 좋다」라고 옮긴다。『義疏』에는 「可畏也」으로 되어 있다
  • 焉知どうして分かろうか(いや分かるものではない)。「焉~也」は「いずくんぞ~や」とむ。反語。어찌 알겠는가(아니, 없다)。反語
  • の人間。「後生」に同じ。; 의 人間。「後生」과 같음。
  • 不如~に及ばない。 미치지 않는다。~보다 못하다。
  • 現在の人間。今のわれわれ(孔子を含む)。; 現在의 人間。지금의 우리들(孔子를 包含한다)。
  • 四十五十荻生徂徠は「四十をと曰う、(つか)う(禮記、曲禮上)。五十にして(しゃく)す(禮記、則)。故に四十五十は、立ち名(あらわ)るるの時なり」(四十曰。仕。五十而爵。故四十五十。立名彰之時也)と言っている。『論語』(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照。また、「陽貨第十七26」には「(とし)(し)(じゅう)にして(にく)まる、(そ)(おわ)らんのみ」(年四十而見惡焉。其終也已)とある; 荻生徂徠는 「四十을 이라고 말한다、卽 모신다 (禮記、曲禮上)。五十이 되어 爵位를 받다(禮記、則)。따라서 四十五十은、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는 때이다」(四十曰。仕。五十而爵。故四十五十。立名彰之時也)라고 말하고 있다。『論語』(国会図書館 digital collection照。또、「陽貨第十七26」에는 (年四十而見惡焉。其終也已)으로 되어 있다。
  • 無聞が聞こえてこない。; 이 들리지 않다
  • 句末文末に「焉」が置かれた場合は訓しない。定の持ちを示す助詞。; 定의 느낌을 나타내는 助詞。
  • これはまあ。; 이것은
  • 不足畏畏敬する値打ちがない。; 畏敬 價値가 없다
  • 也已「のみ」とむ。『義疏』では「也已矣」に作る; 「뿐」。『義疏』에는 「也已矣」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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